김태랑 자전적 에세이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
저자 | 김태랑 |
발행일 | 2011. 8. 10 |
승인번호 | |
정가 | 12,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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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사람이 바로 서야 정치가 바로 선다!
우리 정치를 4류라고 막말하게 만든 이는 과연 누구인가!”
역사는 갑갑할 정도로 더디게 나아간다. 때로는 장애물을 만나 물길이 솟구치며 격변을 일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보 전진, 일보 후퇴의 흐름을 이어간다. 우리에게 역사의 시간은 인색하게도 정상에 머물 시간을 오래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정치를 4류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 그 3류보다도 못한 4류 정치와 정치인은 누가 만들어 냈는가? 여기에 당당하게 “난 아니오.”라고 답할 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출판사 서평
「우리는 산을 옮기려 했다」는 그 이전에 나온 「용마루에 걸린 달」(1999년)을 수정 보완한 증보판으로 “개인의 삶을 넘어 민주당의 역사를 정통기법으로 찬술한 교과서와 같은 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는 요청이 있어 2001년에 개정판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10년째가 되는 지금, 이 책에 대한 수요가 생긴 것은 한국 정치사의 흐름에서 볼 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김태랑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 나오며 그가 온몸으로 맞은 우리 정치사이자 역사이다. 그는 열자에 나오는 탕문평의 이야기를 우리 정치사에서 실현하였다.
산을 옮기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지만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 가지 일에 매진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산을 옮기겠다는 열정 하나만으로도 이미 산은 옮겨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가슴에 꼭 새겼으면 한다. 바로 이 시대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그런 우직함과 열정, 야성과 끈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글_ 성낙인(成樂寅, 서울대 법대 헌법학 교수(前학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제1장 _ 장비, 독우를 치다
“하필 경상도 사람이”/ 고향, 내 꿈의 산실 / 척박한 대지와 푸른 하늘 사이에서 / 자만심과 부끄러움 / 재사(才士)의 기질 / 하이네와 사미인곡 /잘못된 선택 / 장비, 독우를 치다 / 내 운명의 동반자 / 성곡 김성곤의 그릇
제2장 _ 20년 후
방황, 또 방황 / 여당에서 야당으로 / 김대중과 김영삼 / 동교동 입문(入門) / 긴 겨울잠 / 20년 후 / 꺾여 버린 고향 창녕의 민주화 열기 / 회한의 절규 / 유신독재시대의 광고쟁이 / 합동수사본부 /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 영남인의 고뇌
제3장 _ 국민은 김대중을 버리지 않았다
호구지책과 정치 / 『동교동 24시』/ 불출마 선언 / 6·29 선언과 평화관광 / 공산권의 문호개방 / 어느 안과의사의 양심 / 현장을 사수하라 / 국민은 김대중을 버리지 않았다 / 3당 야합과 지자제 쟁취 / 내 인생의 황금시대/“국회의원 할 생각 마라”/ 애증 그리고 애정 / 아! 선생도 사람이구나 / 한 시대가 가는구나
제4장 _ 끝없는 도전
사공 많은 배 / 새로운 시작 / 서울시장을 확보하라 / 협력할 때와 경쟁할 때 / 대장정의 시작 / 1500년 만의 신화 / 김대중 대통령 / 두견이 울 때까지 봄을 기다려라 / 동백회를 만들다 / 국회의원의 자화상
제5장 _ 꿈이 있는 정치
나의 길을 가련다 / 조직인은 말이 없다 / 의리와 도리 / 우리가 나무라면 / 용이 되려는 사람들 / 정당 민주화의 길을 닦으며 / 인구비례 대의원제 / 존경하는 형에게 / 누가 민족의 미래를 말하는가 / 꿈이 있는 정치
김태랑(金太郞, 1943년 ~)
“우리 총장님 오셨네. 총장님, 저희랑 사진 한번 찍어주세요~.”
국회 사무처에 들렀을 때 직원들이 반기며 하는 말이다.
그는 2006년~2008년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국회와 국민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온 힘을 쏟아 국회가 국민 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퇴임 후 청조근정훈장을 수상하여 공로를 인정받았다.
경남 창녕에서 화왕산의 뜨거운 열기와 고향의 따뜻한 정을 온몸으로 품고 국립 부산수산대학까지 졸업한 엘리트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야당 생활을 시작한 것이 어언 40여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그는 김대중 선생 조직 비서, 평민당 조직국장, 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 차장, 민주당 조순 서울시장 후보 조직위원장,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및 사무부총장, 6·4 지방 선거 부산·경남 선거대책본부장,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역, 15대 국회의원, 새천년 민주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인사위원장, 현 민주당 고문으로 한 번도 당을 옮기지 않고 정통 민주당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영남인으로서 유일한 동교동맨으로 남아 있는 그는 일관된 소신과 확고한 신념을 지닌 정치인으로, 인구비례 대의원제를 제안하여 모든 정당이 이를 시행함으로써 21세기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제 그는 한국 정치의 새 장을 열고자 또 다른 시작의 출발선상에 섰다.